수승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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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후 조선 중종 때 요수 신권 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암구대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이라 하였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 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니 대의 면에다 새김에서 비롯되었다.
관수루는 서원의 문루로 1740년 창건되었다.
<관수>란 맹자 진심장구편에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의 흐름을 보아야 한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하여 선비의 학문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름 지었다.
구연서원은 요수 신권, 석곡 성팽년, 황고 신수이 세 분의 행의와 학덕을 경모하고 계승하기 위하여 사림들이 세운 서원으로 1540년 신권이 구연재를 완성 하였으나 1694년 구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사당이 훼철(1868년)되었으나 강당과 문루인 관수루는 그대로 지속되어지고 있다.
요수정은 요수 선생이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관수루와 거북 바위를 두고 마주하고 있는 정자로서 앞면 3칸 옆면 2칸짜리의 정자를 요수정이라 한다.
누각이지만 마루 가운데 판자로 한 칸의 온돌방을 만들어 놓고 있다. 불을 때던 아궁이도 있고 굴뚝뒤에 있는 축대로 끄트머리 부분에 낸 것이 이채롭다.
요수 신권 선생이 1542년 구연재와 남쪽 척수대 사이 물가에 처음 건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그 뒤 수파를 만나 1805년 후손들이 현위치에 옮겨 세웠다.
구연대(암)라는 명칭은 마치 바위가 계류에 떠 있는 거북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구연대, 또는 암구대 (岩龜臺)라고 하는데, 높이는 약 10m, 넓이는 50m²에 이른다.
비록 키는 작지만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겪은 노송들이 곳곳에 자라고 있는 거북바위에는 수승대의 문화적 의미를 알 수 있는 많은 글들이 새겨져 있다.